2010년 12월 31일
덧글 구걸
# by | 2010/12/31 13:45 | 신변잡기 | 트랙백 | 덧글(19)
나는 대학 신입생 때 많은 시간을 "나는 과연 정상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데 할애했다. 결론은 결국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충실히 실행해서 나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 내가 정의하는 '정상'이란 무엇인가.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기준은 무엇인가. 야콥 하인의 '옌젠씨 하차하다'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옌젠, 그는 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생각한다. 옌젠씨도 처음에는 정상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은 '불안'에서 찾을 수 있다. 사르트르가 말하기를 인간은 언제나 불안하다고 말했던가. 사르트르의 경우에는 실존적 선택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아리면, 옌젠씨는 정상의 기준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인해 야기된 불안이었다.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내년이면 4학년이되고 취직을 할 것인지, 계속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를 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려면 대기업에 취직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늙어 가면 된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나는 불안하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가.
정상의 기준은 내가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만든기준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기준, 곧 그것은 정상. 나는 정상이 되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었다.
옌젠씨는 하차했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세상의 정상에 대한 기준을 전해주던 텔레비전을 창문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주변의 문제에 관심을 돌렸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는 정신병자에 불과하지만, (내가 보기엔)그는 승리했다.
내 앞으로의 인생도 '하차'의 과정이 많이 요구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불안은 나의 결정을 힘들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 옌젠씨의 '용기'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 by | 2009/11/06 16:07 | 북리뷰 | 트랙백 | 덧글(0)
# by | 2009/11/04 17:51 | 법학 | 트랙백 | 덧글(2)
# by | 2009/11/03 22:05 | 법학 | 트랙백(1) | 덧글(68)
나는 이 문제를 계보학적으로 접근해 보려 한다. 전자서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 중에 법관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서명하고 날인하는 것이 전자서명에 비해 법관 스스로 책임감을 더 느낀다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 계보학적으로 어떤 ‘권력에의 의지’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판결이라는 것은 처분권주의의 원칙상 당사자인 국민이 법관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에 이에 법관이 대답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법관이 높은 지위에서 판결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판결의 서명이 자필로 행해졌는지 전자서명으로 행해졌는지는 관심사가 아니고 판결의 결과가 중요한 관심사인 것이다. 법관이 자필로 서명날인하는 것에 책임감을 더 느낀다는 생각은 권위주의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서명은 법원의 권위를 조금아니마 해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자필에 의한 서명이나 전자서명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 의미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형식의 변화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제사항으로 전자서명의 도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조, 변조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 by | 2009/10/30 15:50 | 법학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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